아기 게가 옆으로 걷는 것을 본 어미 게가 한 마디 했습니다. “너는 어째 옆으로만 가니? 앞으로 똑바로 좀 가 봐!” 그때 아기 게가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아무리 똑바로 가려고 해도 안돼요. 엄마가 한 번 해봐요.” 엄마 게는 아기 게 앞에서 모범을 보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아기 게가 한 마디 했습니다. “그거 봐요. 엄마도 못하잖아요.” 우리가 잘 아는 어미 게와 아기 게라는 우화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무엇이 옳은지, 그른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것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올바른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보다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은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지 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로 가득찬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그냥 두면 썩어가는 것이 죄에 물든 마음입니다. 조금이라도 우리가 잘하는 것은 꽤나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면서 남을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는 것은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하고 있는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다가 잘못하는 것만 보이면 지적을 합니다. 잘하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말 한마디만 실수를 하면 바로 비판을 합니다. 그래서 속이 상하는 것ㅎ입니다. 어저다 한 번 실수한 것을 비판하는 것에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칭찬에는 인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비판에는 가차 없습니다. 비판은 항상 상처를 줍니다. 지금까지 좋았던 관계를 깨뜨립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잘 회복되지가 않습니다. 그 전의 좋았던 관계로 돌아가지를 못합니다. 열심도 떨어집니다. 이제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열심히 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판의 덫에 한 번 걸리면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맙니다. 더 이상 어떤 일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비판을 이기지 못하면 감사와 기쁨도 사라집니다. 머리속에는 온통 비판한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과 불신이 생겨납니다.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비판에 바르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과 인격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판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비판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온 백성들이 기다려오던 왕입니다. 사울은 출중한 사람입니다. 백성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셔서 사무엘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까지 들먹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스가 아니냐? 그가 무슨 왕이야?” 비판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합니다. 깊이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들은 대로 비판을 합니다. 내가 잘못 들었는지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사울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그렇게 아무 말이나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사무엘 선지자가 그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을 인식만 해도 그렇게 쉽게 비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에 대한 비판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비판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단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피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죽음, 세금, 그리고 세번 째가 비판입니다. 비판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다면 비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물질을 희생해 가며 헌신하고 있다면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오해를 합니다. 절대 아닙니다. 비판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한 모세도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비판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내 목숨까지 희생하며 일을 해도 비판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비판이 있다는 것을 먼저 예상해야 합니다. 나에 대해서도 항상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알면 비판에 대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비판에 직접 대응하지 말고 옳은 길을 그대로 가야 합니다. 누구라도 불만을 가질까봐 제비를 다시 뽑았습니다. 사무엘이 단독으로 정한 것이 아닙니다. 공명정대하게 제비를 뽑았지만 사울이 왕으로 뽑혔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틀림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래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을 제시한 것도 아닙니다. 사울보다 더 나은 사람을 추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사울이 싫은 것입니다. 이것이 비판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감정은 상할대로 상했습니다. 하지만 비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틀려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응을 한다고 비판이 중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질 것입니다. 말은 하는 태도가 불손하다고 비판을 할 것입니다. 정작 본질은 다 벗어나고 맙니다. 전혀 관계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비판을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원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유일한 길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처럼 처신하는 것이다아무 말도 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비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입을 다문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나약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은 받고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뚜렷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울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거세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울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비판 때문에 하던 일을 중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비판은 대수롭지 않은 것입니다. 그 비판에 마음을 쏟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당당합니다. 호의적인 평가를 억지로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 자존감을 갖게 되면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판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비판이 사울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판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는 성장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사울은 아직 제대로 준비한 것이 없습니다. 초대 왕입니다. 전임자가 없습니다. 왕의 수업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정치 철학도 없습니다. 배울만한 교과서도 없습니다. 학문을 깊이 통달한 것도 아닙니다. 자기 처지를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도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선택만 있었을 뿐입니다. 백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해준 것도 사무엘이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판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것을 사울이 깨닫는 순간 그는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들을 통해 겸손하게 배우려고 했습니다.

뉴욕에 있는 킹스 칼리지의 학장이었던 로버트 쿡은 젊은 시절 사람들의 비판에 몹시 시달렸습니다. 그는 신실한 목회자였던 해리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때 해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자네에 대한 그 비판이 진실이라면 자네가 하는 일을 당장 고치게.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깨끗이 잊어버리게!” 로버트는 이 말이 평생 자기의 가슴 속에 박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에 대한 비판이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성장하는 기회로 삼으면 됩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비판이 사실이 아니라면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깨끝이 잊어버려야 합니다. 잘못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잘 잘못을 분명히 가려 주실 것입니다. 입에 쓴 음식일수록 몸에는 좋은 법입니다. 입에 달라붙는 달콤한 음식만 가까이 하다 보면 건강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비판의 쓴 소리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성장시키려는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비판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를 통해 한걸음 더 성장해 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