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이방에 있는 교회들과 장로들을 설득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구제 헌금을 모금하여 도착했습니다. 환영함과 동시에 사도 바울의 오해를 해소하길 권유했던 예루살렘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아무 잘못 없는 사도 바울더러 나실인의 서약식을 금전적으로 후원하고 그 예식에 참여할 것을 추천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도 바울은 억울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묵묵히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문제는 커지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등장한 사도 바울을 붙잡아 구타하기 시작합니다. 성전의 뜰에 이방인을 들였다는 거짓 음모로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소동을 듣자 천부장은 자신들의 군대를 동원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 그 무리들 중에 붙잡혀 있던 사도 바울을 포박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자초지정을 듣길 원했던 천부장은 사실 사도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알게 되어 그를 자신의 요새에 구금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적대감은 점점 심화되어 그를 살해하려는 음모로까지 발전합니다. 약 40명의 유대인들이 결집해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그들의 계획을 알립니다. 그들의 계획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공회로 불러오라고 요청한 후, 바울이 이동할 때 길에서 그를 암살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울의 조카가 어떻게 이 음모를 알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이 사실을 급히 바울에게 알렸고, 이를 천부장에게 보고하게 됩니다. 그 결과 천부장은 혹시 모를 암살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 그날 밤 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하게 됩니다. 이때 호송에는 200명의 보병, 70명의 기병, 그리고 200명의 창병이 동원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영적 전쟁의 관점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부터 시작된 실질적 영적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40명의 암살단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위협은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왜 지금 로마 천부장의 요새에 갇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함께 하시겠다고 담대하라고 약속하셨는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아마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버텼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바울은 보이지 않던 실질적인 위협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둬 놓으신 천부장의 요새가 실제로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더불어, 조카를 통해 천부장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위험에서 지키고 계셨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총독 벨릭스의 관저에 머물 때, 대제사장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변호사를 고용해 바울을 고소합니다. 그들은 바울을 전염병 같은 인물로 묘사하며, 그가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 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며, 여러 해 만에 민족을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고,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며 결례를 행했지만 소동을 일으킨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자신에게 죄가 있었다면, 목격자인 유대인들이 직접 나서서 고발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또한, 자신은 죽은 자의 부활 때문에 심문을 받는 것 외에 잘못한 것이 없다고 변론합니다.
총독 벨릭스는 즉각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고 판결을 미루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채로 2년 동안 가이사랴에서 억류되게 됩니다. 바울의 답답함을 생각해 본다면, 이 인생 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다만 그 삶 속에 뚜렷이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임함을 확신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