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매일 우리는 크고 작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고, 그 결정들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는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됩니다. 우리의 성향, 신앙, 인생관이 모두 우리의 결정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지혜롭게 결정하는 법’은 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결정’은 무엇일까요? 단지 머리가 좋은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이 내리는 결정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오히려 우리는 지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먼저 ‘어리석은 결정’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두 번쯤은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숙제를 미루거나, 어른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 마음과는 다른 선택을 했던 일들 말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의 일입니다. 만원 버스의 눅눅한 냄새와 비 젖은 우산들에 부대낌이 싫어, 비오는 날이면 일부러 우산을 들고 학교까지 걸어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여유를 부리다가 너무 늦어, 등교길 중간에 있는 분식집에 들러 혼자 우동을 먹고 비 오는 풍경을 감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쩌면 단순한 일탈처럼 보이는 이 일도, 지금 돌아보면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엔 감정과 이유가 있었고, 그 역시 인생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결정이 반드시 결과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과 ‘기준’에서 그 결정을 내렸는가입니다.
이 지점에서 야고보서 3장 13–18절 말씀을 마주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참된 지혜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삶은 ‘온유함으로 나타나는 선한 행실’로 구체화됩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은 약하거나 소심한 것이 아닙니다. 강한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유연하게 버티는 갈대처럼, 내면의 단단함을 지닌 부드러움입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처럼, 온유함은 세상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 걸까요? 나 자신을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이웃을 위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야고보서의 가르침은 우리가 나를 넘어서 타인을 향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관계를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야고보는 경고합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그것은 위로부터 온 지혜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런 지혜는 세속적이고 정욕적이며, 심지어 악한 영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시기와 다툼은 자주 일어납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지고, 내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갈등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태도를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인생의 본질적 병으로 보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어 말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이는 자기중심적인 삶이 결국 공동체 안에 질서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내면도 병들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참된 지혜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그것은 성결하고,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말보다 삶으로, 지식보다 태도로, 논리보다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참된 지혜는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서 자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그 결정이 참으로 지혜롭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기적 야망이 우리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도록 주님 앞에 마음을 조명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로 분별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