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에 사는 분들은 민물고기 하면 그랜비 호수에서 잡히는 레잌트라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개천에서 가장 많이 보는 민물고기는 작은 피라미입니다. 피라미를 모르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동네 개울에서 늘 보던 작은 물고기입니다. 오랫만에 서울에 가면 미주한인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청계천입니다. 과거에는 온갖 오물 냄새가 나고 더러운 곳이 청계천이었습니다. 하지만 20년 전 이명박 정부때 청계천을 완전히 복원을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얼마나 깨끗한 물이 흐르는지 모릅니다. 시민들이 청계천에 나와 물놀이를 하고 야외 활동을 하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국립중앙과학관이 청계천 복원 20주년을 맞이하여 청계천에 서식하는 담수어류의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 민물고기 개체수가 무려 1,238가지로 나왔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물고기가 바로 피라미였습니다. 전체 물고기의 무려 53.7%라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피라미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가장 많은 물고기가 갈겨니라는 물고기입니다. 전체 물고기의 14.7%나 되었습니다. 결국 피라미와 갈겨니가 70%나 되는 결과니 민물 고기의 대부분은 피라미 아니면 갈겨니인 것입니다. 사실 피라미와 갈겨니는 겉으로는 구분이 안갈 정도로 비슷합니다. 크기도 모양도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거의 구분을 하지 못합니다. 대표적인 차이점은 줄무늬입니다. 갈겨니에는 새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피라미는 가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어류에서 줄무늬 방향을 정하는 것은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과 좀 다릅니다. 우리는 물고기들을 물에서 노닐 때 가로 방향으로 봅니다. 하지만 줄무늬 방향을 정할 때는 머리를 위에, 고리를 아래에 둔 상태에서 합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아가미에서 꼬리 바로 앞까지 몸 중앙을 따라 연속적으로 나타난 갈겨니의 줄무늬는 가로가 아니라 세로인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두 물고기의 먹이입니다. 갈겨니는 수서 곤충만 먹습니다. 그러나 피라미는 수서 곤충도 먹고, 유기물과 식물 프랑크톤까지 먹습니다. 기이한 현상은 두 물고기가 서식지가 같을 때 일어납니다. 동물이나 물고기의 먹이 싸움은 치열합니다. 싸움에서 이겨야만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갈겨니와 같이 있는 피라미는 놀라우리만큼 침착합니다. 갈겨니가 옆에 있을 때 피라미는 수서 곤충을 먹지 않습니다. 유기물과 플랑크톤만 먹습니다. 수서 곤충은 갈겨니의 유일한 먹이이기 때문입니다. 피라미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양보한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갈겨니와 피라미는 싸우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의 종족을 보존해 줍니다. 그래서 두 물고기의 개체수가 전체 민물에 가장 많은 것입니다. 그 중에서는 양보를 받는 갈겨니보다 양보하는 피라미가 훨씬 많습니다. 전체 물고기의 절반을 피라미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모를 일찍 여읜 조카 롯을 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롯이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까지 온 것은 그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아브라함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나안에서 그들의 소유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초지를 두고 두 사람의 목자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종들의 분쟁은 아브라함과 롯의 갈등으로 발전했습니다. 큰 싸움이 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먹이 싸움은 동물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롯은 삼촌과 기꺼이 싸우려고 했습니다. 자기 소유의 동물들을 먹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싸울 생각이 아예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13:8). 그 마음은 큰 양보로 나타났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9). 삼촌의 양보를 받은 롯은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땅을 선택해서 떠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풀한포기 나지 않는 땅을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곳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양보를 받은 사람이 크게 될 것 같지만 정반대였습니다. 양보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정말 좋은 신앙은 양보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