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새벽에 묵상하고 있는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의 차디찬 돌벽 안에서, 자유를 잃은 몸으로 써 내려간 영혼의 편지이며, 교회를 향한 간절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비록 그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결코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웠고, 하늘의 은혜에 깊이 젖어 있었습니다. 그 자유로운 영혼으로, 바울은 그리운 에베소 교회를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이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편지는 지금 이 시간 말씀 앞에 서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처음 에베소 땅에 발을 디딘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그의 제3차 전도여행 때였습니다. 이전에도 잠시 그곳을 지나친 적이 있었으나, 그 도시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추어진 깊은 영적 공허와 우상 숭배의 실상을 마음 깊이 품고 다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 제국 안에서도 손꼽히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시장은 각국의 상인들로 북적였고, 거대한 아데미 신전은 도시의 상징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물질주의와 혼합된 이방 신앙, 음란과 우상 숭배가 만연한 도시—겉으로는 번영했으나, 영혼은 황폐했던 땅이 바로 에베소였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무려 3년 가까이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리고 ‘두란노 서원’이라는 강의실에서 날마다 성경을 풀어 가르쳤습니다. 병든 자들이 치유를 받고, 귀신 들린 자들이 자유를 얻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마술책을 불태웠습니다. 그 뜨거운 회개의 열매가 바로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노예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노동에 시달리며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일을 마치면, 그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두란노 서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철학자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던 자리를 빌려, 바울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풀어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가정과 공동체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성도들의 눈빛은 말씀을 향한 갈망으로 빛났습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고, 또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작은 집에서 소그룹으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작은 불씨가 온 에베소로 번져 나가, 결국 아시아 전역에 주님의 말씀이 퍼져나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일이 두 해 동안 계속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9:10)

하지만 복음은 언제나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상 장사꾼들의 생계가 위협받자 큰 소동이 일어났고, 바울은 결국 에베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 5~6년 후, 그는 로마의 차가운 감옥에 갇힌 몸으로 다시금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그는 그들이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의 눈빛을 기억했습니다. 말씀 앞에서 흘리던 눈물, 변화된 삶의 모습, 서로 사랑으로 섬기던 손길—그 모든 것을 아버지가 자녀를 그리워하듯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 속에는 영적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고통의 자리에서도 결코 교회를 잊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의 자리에서, 더 간절히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늘의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말씀하시는 분은 단지 사도 바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편지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교회야, 나의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기억한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한다.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원한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음성으로 오늘 우리에게 건네지는 살아있는 편지입니다. 이 에베소서를 함께 새벽에 묵상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