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 전역을 통일한 인물이 바로 진시황입니다. 진시황은 그의 이름이나 시호가 아닙니다. 진나라의 첫번째 황제가 바로 진시황이라는 뜻입니다. 진나라는 오랜전부터 있던 춘추전국시대의 한 나라입니다. 진시황은 진나라의 31대 군주이자 6대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대업을 이룬 왕이 되었습니다. 그후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약 2천년에 걸쳐 이어진 황제 중심 중앙집권제를 처음으로 통일왕조에 실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황제는 첫 번째 황제라는 뜻으로 진나라의 첫 황제라는 진시황제, 또는 이를 줄여서 진시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을 집권하고 있는 시진핑을 가리켜서 시황제라고 종종 부릅니다. 중국의 전통으로 연임까지만 할 수 있었던 국가 주석의 자리를 3연임을 하고 종신 집권까지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시황과 관련된 것 가운데 불로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중국 최초의 황제로서 막대한 권력과 부를 소유했습니다. 하지만 불로장생만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시황은 동방의 나라에 그것을 먹으면 장수를 누릴 수 있고, 동시에 죽은 사람의 얼굴에 그것을 놓으면 생명이 소생한다는 영험한 버섯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는 즉시 신하 서복에게 불로장생한다는 불로초를 찾아오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서복은 불로초를 구하러 동방으로 떠나게 됩니다. 배를 60척이나 동원을 합니다. 일행은 무려 5천명이 넘습니다. 신선을 만나려면 동남 동녀가 필요하다고 해서 3천명의 어린 소년 소녀도 데리고 갑니다. 그들을 데리고 서복은 이주, 단주에 도착을 합니다. 이주는 대만은 가리키고, 단주는 일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 나라 제주도의 서귀포까지 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쓸데없는 일이었습니다. 볼로초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노력으로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진시황은 그 많은 업적과 소유를 뒤로하고 49세에 죽고 맙니다.

현대 시대에는 불로초가 없어도 과거보다는 훨씬 오래 삽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크게 연장시켜 놓았습니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불과 30-40년 전보다 20년 이상 늘어났습니다. 가끔 교우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죽을만 하면 또 살려놓고, 죽을만 하면 또 살려놓습니다다 죽어가던 사람이 병원만 가면 또 살아서 나오는 경우가 요즈음에는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같이 만나는 목사님들 중에 당뇨 환자들이 여러분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한 분을 만났는데 팔뚝에 붙인 당조절 패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병원이나 가족들, 자기 자신의 스마트폰이 즉시로 당수치가 나오게 하는 장치입니다. 식사를 같이 했는데 아무 간도 하지 않은 순두부를 시켜서 먹었습니다. 밥은 한숟가락도 뜨지 않고 그냥 둔 것을 보았습니다. 전에는 아침 공복에 당 수치를 확인하고는 정상이다 싶으면 먹고 싶은 것을 그냥 먹었답니다. 하지만 이 패치를 달고부터는 당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 무서워서 아무거나 절대로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밥 한숟가락만 먹어도 당이 20-30은 올라간다고 합니다. 또한 밥만 먹으면 30, 한 시간씩 걷는다고 했습니다. 하루에 25천에서 3만보를 걷는다고 했습니다. 패치를 단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하루 하루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지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만나고 난 후에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불로초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이 이미 우리 모두에게 불로초를 손에 쥐어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분명 과거보다 오래 삽니다. 하지만 불로초의 소유와 동시에 삶의 질도 나아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래 살지만 힘들게 오래 사는 경우들이 많아졌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7:22). 이 땅에서 얼마를 사느냐는 하나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오래 사는 목표를 두기보다는 마음의 즐거움을 누릴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더 좋은 목표일 것입니다. 근심, 걱정보다는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