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가 오늘 창립 5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그냥 세워지는 법이 없습니다. 풍랑없는 바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지난 57년 동안 결코 잔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수많은 거센 풍랑들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만큼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 중에도 그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말씀을 안하신 것이 아닙니다. 틈나는 대로 제자들에게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주님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제자는 없었습니다.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는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는 한 주간 동안 주님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큰 힘이 되어 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한 음모가 한참 진행되던 고난주간 중의 수요일입니다. 주님은 베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쉬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마리아가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머리에 그 향유를 부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면 아까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귀중한 것을 허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옥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이 일이 얼마나 큰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내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십자가를 고독하게 혼자 감당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죄없으신 분이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자청하심에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만이 주님의 죽음을 알아준다고 하신 것입니다. 향유는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죽은 시체에도 붓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죽음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은 내 장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때 교회는 든든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님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 중에 있었던 한 권사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가난하신 분이었습니다. 남편 분은 평생 거의 일을 안하셨고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권사님 혼자 삼남매를 키우시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청소 일을 하시면서 지친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는 빠지지 않고 나오셔서 교회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교회가 부흥을 하면서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분에게 여유가 있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큰 금액이던 2천만원을 작정 헌금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더 많은 청소를 하시면서 매달 그 헌금을 분납해서 드리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건축이 완성된 후였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시고는 교회에 남아 교회 구석 구석을 늘 청소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기쁘게 교회를 청소하시는 그 모습이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교회를 향한 그 헌신과 사랑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습니다.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서갈 수 있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마리아를 크게 칭찬하셨듯이 주님은 그 권사님 가정에도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삼남매 자녀들이 형통하고 잘되었습니다. 딸은 시집을 가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큰 아들은 중견 기업을 이끌면서 지금까지 교회에 헌신하는 귀한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곁길로 나갔던 둘째 아들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라오스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연세가 많이 되셔서 잘 걷지를 못하십니다. 그러나 지금도 한국에 가서 아버님 교회를 방문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저를 꼭 잡아 주시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해서 옥합을 깨뜨렸던 교회를 마지막까지 기도로 지키고 게시는 그 분을 보면 마치 돌아가신 아버님, 어머님을 뵙는 것도 똑같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