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주간에 GP 선교회 이사회를 참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왔습니다. 요즈음에는 항공기 연착과 스케쥴 변경이 자주 있어서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권의 책과 읽을 자료들을 가지고 출발을 했습니다. 공항에 나갈 때도 임박하기 가기 보다는 여유있게 도착해서 책을 보는 것이 마음에 여유도 있고 시간 활용에도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가지고 간 책들은 복된 죽음 준비 세미나에서 다루어질 내용들과 연관된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신학자와 장의사가 공동집필한 ‘좋은 장례’라는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자들은 인류 역사 이래로 장례라고 하는 예식의 본질에 대해서 아주 심도있게 다루었습니다. 장례 예식은 산 자가 죽은 자의 육체를 정성껏 수습하고, 그 육체를 부여잡고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함께 가다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이별의 지점에서 하나님의 손에 죽은 자를 맡겨 드리고, 그런 후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안심하며 다시금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정의에 저도 큰 공감이 일어났습니다. 앞으로도 장례를 집전하면서 세심하게 돌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도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또 하나 여행 중에 읽으려고 가지고 간 자료는 미국 작가인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인 ‘마지막 잎새’였습니다. 아주 짧은 소설이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알고 읽었었던 작품입니다. 교과서에도 나오기 때문에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소설의 내용이 주는 메시지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려고 했던 것은 이제 한 달 후면 제 인생 전체적으로는 40년 사역, 그리고 우리교회에서의 18년 사역을 마치고 은퇴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잎새’라는 제목이 저의 ‘마지막 한 달’이라는 것과 의미가 통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와 존시는 화가 지망생입니다. 그들은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존시가 폐렴에 걸렸습니다. 예민하고 심약했던 존시는 폐렴으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삶의 용기를 잃어갔습니다. 수는 그런 존시의 모습을 너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를 위로하며 따뜻하게 간호해 주었습니다. 수는 아래층에 사는 베어먼이라는 노인을 자신의 그림 모델로 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는 그에게 존시의 페렴이야기를 합니다. 베어먼 역시 옛날에는 꿈많은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평생 꿈을 이루지 못한채 지금은 술주정뱅이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 모습은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갔습니다. 그는 화가로서 언젠가는 걸작을 꼭 그려보고 싶다는 희망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침대에 누운 존시는 옆집 담벼락의 담쟁이넝쿨 잎들이 하나씩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절망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왔습니다. 잎새가 하나 둘 떨어져 나갔습니다. 밤새 비가 오면 결국 마지막 잎새까지 모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존시도 죽습니다. 베어먼 노인은 존시가 삶의 끝을 놓지 않도록 밤 중에 담벼락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습니다. 존시는 비 온 다음 말 아침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며 희망을 갖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기력을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잎새를 그리며 비를 심하게 맞은 베어먼 노인은 폐렴에 걸려서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가 그린 마지막 잎새는 평생 꿈꾸어 오던 걸작이 됩니다. 존시의 생명을 살리고 그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한 없는 희망을 선사하는 작품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 잎새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도 희망이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새벽이 찾아오지 않는 밤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새벽은 반드시 오기 마련입니다. 저는 마지막 한 달을 제 인생의 새로운 한 달로 보려고 합니다. 12월은 새해, 첫달인 1월을 준비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낳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