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족들과 함께 콜로라도에 처음으로 온 것은 2007년 10월 26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흘 후인 10월 29일 교회 창립 39주년예배부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6학년, 8학년이었던 아이들 둘을 데리고 미니벤에 짐을 가득 싣고 LA에서 덴버까지 16시간을 달려왔습니다. 큰 아들은 미시건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길에 같이 동행하지는 못했습니다. 덴버에 거의 다다르기 얼마전인 베일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맥도널드에 들어갔습니다. 햄버거를 식히고서 먹고 있는데 당시 6학년이던 딸 아이가 엄마와 아빠의 어깨를 짚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면 LA로 돌아가 주세요!” 아이들에게는 태어나서 자라고 많은 친구들이 있는 켈리포니아를 떠난다는 것이 큰 충격이고 어려움이었던 것을 그 한 마디로 다 표현을 한 것입니다. 저희 부부 역시 여행으로 한 두 번 와봤던 것밖에 없는 낯선 땅, 덴버에서 오늘까지 18년간 사역을 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보는 사람들 같지 않게 모든 교인들이 기쁘고 반갑게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한인들이 많이 사는 오로라 지역이나 파커지역으로 거주지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본당 바로 옆에 사택이 비어있는 것을 알고는 그 사택에서 살기로 저희 부부가 결정을 했습니다. 장로님들은 사택도 누추하고 학군도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에 아파트를 구하라고 하셨지만 저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교인들을 알고 섬기기 위해서는 사택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새벽예배를 걸어서 간다는 것이 저희 부부에게는 한없는 축복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사택에서 그 다음해 8월까지 10개월을 살았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축복된 기간이었습니다. 교회를 매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돌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언제라도 오고 가는 교인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중 언제라도 본당에 들어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2년전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준비하고 있는 시니어 사역에 대한 동기부여가 생긴 것은 제가 부임한 한 달후 발생했던 한 교우의 소천때문이었습니다. 2007년 12월 초순으로 기억을 합니다. 김기태 장로님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70대 중반이셨던 박수원 집사님이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평소에 늘 연락이 되던 분이었는데 그 날따라 전화를 아무리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상해서 집을 방문하시게 된 것입니다. 박 집사님이 타시던 차는 그대로 있는데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예감이 안 좋아서 경찰이 신고를 하셨습니다. 경찰이 와서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박 집사님이 현관 앞에 쓰러져 계셨던 것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뇌출혈이셨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연락을 받고는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쓰러지신지 여러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쉽게 호전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저하고는 몇 번 만나지도 못했던 분입니다. 그것도 예배시간에나 뵐 수 있었고 개인적인 대화도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식이 돌아오신 박 집사님은 기도를 마친 저를 붙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다 쓸데 없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두 번 더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제 손을 붙잡으시고는 “목사님, 다 쓸데 없습니다”라는 말씀만 반복하셨습니다. 이렇게 쓰러지고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하신 것 같았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마지막이 다가오고 보니 지나온 일생의 모든 것이 허망해지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박 집사님은 회복하지 못하시고 소천을 하셨습니다. 저는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분이 저를 볼 때마다 되뇌이셨던 “목사님, 다 쓸데없습니다”라는 말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은퇴후에 시니어 사역을 하려고 한 중요한 배경 중에 하나가 바로 박 집사님의 마지막 말씀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한 번 뿐인 인생 정말 행복하고 멋지게 살다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고 축복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인생일까를 고민하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나온 것이 ’복된 죽음 준비 세미나’입니다. 제가 부임한 첫해와 마지막 해가 정확하게 연결되는 것 같아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